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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홍성태 이메일 hyerinoj@daum.net
작성일 2020.04.25 조회수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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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패에서 길을 찾다
2020년 4월 25일 토요일 생명의 삶 묵상 [신명기 9:22-29]

오늘 본문은 신명기 9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생명의 삶 큐티는 9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목요일과 금요일과 토요일 3일 동안 묵상하게 편집되었다. 이 목요일부터 이어진 9장의 전체 내용을 보면 모세가 그 백성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지난 목요일 본문에서 모세는 그 백성을 향해 이런 경고를 했었다.

[신명기 9: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이들이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땅, 가나안은 거인들, 즉 아낙자손들이 사는 땅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40년 전에 그 땅을 정탐하고 온 이후에 탄식 가운데 이런 말을 했었다. “거기에는 아낙 자손들이 삽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입니다. 우린 다 죽었습니다. 누가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그 40년 전의 부르짖음이 섞인 질문에 대해 이제 대답하신다. “내가 한다. 너희들이 절대 못이긴다고 말한 그 아낙자손을 내가 직접 무찌르고, 그들로부터 땅을 빼앗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땅을 차지하는 주인공은 너희들이 아니다. 너희들은 다 죽을 것이다. 대신 너희의 자녀들이 나의 은혜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땅, 가나안은 그런 땅이다. 그 조상들이 그들을 이길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했던 곳을, 하나님이 직접 싸워서 그 후손들에게 선물하시는 땅.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그 은혜를 망각하고, 마치 그 아낙 자손들을 자기의 힘으로 이긴 것인 양, 으스대는 것에 대해 경고하신다. 즉, 그 땅을 주신 분이 누구인가를 잊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그 풍성한 은혜를 망각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분노를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들이 이미 그 조상들에게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 첫 번째는 무엇인가? 금송아지 사건이었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받기 위해 40일을 금식하며 호렙산에 올라가 있을 때, 그 백성들은 그곳에서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을 맺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하나님 앞에서 직접 소리를 쳤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습니다. 우리를 다스려주세요.” 그렇게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총회를 연 이후에 모세가 호렙산으로 올라가고 그 백성은 평지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4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이런 죄를 저질렀다.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거기에 이름을 부여했다. “여호와” 이것이 왜 엄청난 죄인가? 금송아지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신이다. “멤피스” 그 멤피스를 위한 제사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또 음란했다. 젊은 남녀가 공개적으로 몸을 섞는 음란함으로 가득한 제사였다. 그 더러운 이집트의 우상숭배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했다. 성경은 그들의 행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이 금송아지 신상 앞에서 뛰놀았다.” 얼마나 음란하게 놀았는가를 꼬집어서 말해준다.

이것이 그 조상들이 하나님의 분노를 유발한 첫 번째 대표적인 사건이다. 두 번째는 무엇일까? 그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이다.

[신명기 9:22]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모세는 그 조상들이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든 두 번째 일을 말하면서 세 지명을 동시에 나열한다. 다베라, 맛사, 기브롯 핫다아와. 이 세 지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 지명 모두 예전에 다른 이름이었다가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다. 다베라는 “불사름”이라는 뜻이고, “맛사”는 시험이라는 뜻이고, 기브롯 핫다아와는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새로운 이름이 생겼을까?

“다베라”에 대한 이야기는 민수기 11장에 기록이 되어있는데, 백성들이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했다. 여기에서 “악한 말”이란 하나님을 향해 아주 상스러운 욕을 했다는 뜻이다.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불을 내리셨고, 그들의 진영과 사람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모세의 간구로 겨우 불이 사라졌다. 여호와의 불로 죄인들이 불살랐다. 그 충격적인 장면으로 인해 이런 이름이 새롭게 주어졌다.

“맛사”에 대한 이야기는 출애굽기 17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다른 두 가지보다 훨씬 유명한 사건이다. 광야를 지나는데, 물이 떨어졌다. 이미 그 전에도 물로 인해 그들이 시험을 당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의 시험은 “나를 신뢰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시는 것”이었고, 늘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가혹하지도 않았으며, 늘 그 시험의 끝에는 시원한 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시험을 또 통과하지 못했다. 되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원망으로 하나님을 테스트했다. 이런 개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어디까지 참으시나 두고 보자!” 이러면서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까지 했다. 늘 선지자를 죽이는 이스라엘의 좋지 않은 습관이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참으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선지자를 죽이고, 예수님까지 죽였다. 아무튼 여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에게 화풀이를 했고, 마치 자신이 물을 주는 것처럼 말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다. 그로 인해 모세조차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시험”이 되었다.

세 번째 “기브롯 핫다아와”에 대한 이야기는 첫 번째 “다베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민수기 11장에 기록이 되어 있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이 있었다. 정말 최악의 발언이 쏟아졌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이집트의 아궁이에 앉아서, 그 불에다가 고기를 구워 먹을 때가 너무 그립다. 키야! 그때 그 고기와 함께 구워서 먹은 그 부추! 그 마늘! 그거 진짜 향기로웠는데. 아 진짜 먹고 싶다.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 그거 뭐냐? 그거? 맛대가리 없는 거! 이제 질렸어! 고기 달라고! 고기!” 하나님이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셨다. 그 다음 날, 메추라기가 바람에 밀려 그들의 진영에 시커멓게 밀려왔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원하는 고기를 마구마구 씹어먹고, 채 그 이빨에 낀 고기 찌꺼기를 빼낼 새도 없이, 그 불평과 원망을 주동한 모든 이들이 다 죽었다. 그래서 “탐욕의 무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들의 불평과 탐욕과 원망과 반역의 역사가 참으로 오래되고 징글징글하게도 질겼다. 그럴 때마다 모세와 아론의 중보의 사역으로 인해 겨우겨우 살아나서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모세는 그 후손들, 그렇게 광야에서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다 목숨을 잃은 부모의 아이들로 구성된, 그 백성들에게 그 처절한 역사를 일부러 더 자세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그 하나님의 진노를 얼마나 온몸으로 막아냈는가도 이야기한다. 그것이 25절부터 29절까지 아주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별 말을 다했다. “하나님 여기에서 이 백성들 다 죽이시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줄 알고 욕해요. 그러니까 제발 참으세요.” “하나님 얘네들 보지 마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보세요. 아무리 미워도 그들의 자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참아주세요.” 거의 하나님께 구걸하다시피 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9장의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마치 이 땅을 차지한 것이 너희들의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는 일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징벌을 받아 새로운 이름을 세 가지나 가지게 되었던 것과 같이 너희도 그런 충격적인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감사를 가지고, 그분에게 영광을 드리며 살아가라.” 이것이 신명기 9장을 통해 모세가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이다.

조상들의 잘못된 것들을 답습할 필요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미 그들의 조상이 보여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징벌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그것을 또 다시 반복해서 똑같은 징계를 받을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그러나 그들은 그런 역사를 반복하고 만다. 그것이 짧게는 사사기로 나타났고, 길게는 인류의 역사 전체로 나타났다. 지금 우리도 그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그 징계로 인해 엄청난 역사에 새겨질 만한 인류의 비극의 이정표를 날마다 세워가고 있다. 20세기에는 두 번의 어마어마한 전쟁이 그랬고, 21세기에는 어마어마한 대유행의 질병들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을 뿐이다.

방법이 없을까? 이 모든 실수를 반복하는 개인적인 삶이나, 전 세계적인 역사의 흐름을 끊어낼 방법이? 성경은 우리에게 늘 그 해답을 제시한다. “모세와 같은 중보자” 그로 인해 이 흐름은 끊어졌다. 그리고 그런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해답일 뿐이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모세와 같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기억하고 “그분의 아버지 되심”에 기대어 다시 그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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